사양지심과 예
맹자 이전의 예는 일반적으로 내면의 선한 마음이 드러나는 행동 방식을 의미했습니다. 그 의미는 맹자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맹자가 예의 실체를 '중용을 가지고 인과관계를 수식한다'(이루상 27)고 할 때, 예시는 인과응보의 마음이 문화적 표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후의 예'(생문공하2), '혼인의 예'(생문공하2), '모든 몸짓이 예에 맞는다'(진심하33)는 문화적으로 흔한 행동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맹자는 이 예도 인간성이나 의로움이 그러하듯이 자연이 준 내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고자상 6). 거절하는 마음(정직추상 6)이나 존경하는 마음(고재상 6)은 예절의 실마리이므로 자신을 우선시하지 않는 마음이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드러날 때 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본보기로 대했는데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없다면 자신의 존중을 되새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이루상 4). 논어에서는 예제가 행동방식이나 사회규범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제가 지식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었고, 맹자 이후 수십 년 후에 태어난 순자에서는 예제가 확실히 학습의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맹자는 그들과 달리 예도 선천적 지향에 의해 성취된다고 주장했지만 맹자는 그것이 어떤 선천적 마음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사랑하고, 자라나면 형제를 사랑하지만, 인과관계가 선천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근거로 삼지만, 그런 예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맹자는 인간에게도 팔다리가 있듯이 인간에게도 태어날 때부터 인간성, 의, 예의, 지식의 각 실마리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유교적 사회질서는 사실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라는 유교적 규범이 인간의 본성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예라 역시 인간의 본성의 하나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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