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에 대한 도전
공자와 맹자 사이에서 활동하던 묵적은 묵가라는 학파를 형성하여 묵자(ja子)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사회적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을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진단한, 아마도 수공예품에서 온 하층민 출신이라고 생각됩니다. 공자를 세운 유가는 결코 이기심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기심은 인류와 양립할 수 없는 악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6명의 친척에 대한 유가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차등적인 사랑에 머무르는 것을 이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대부와 왕자들이 자기 가족이나 자기 나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의 가족이나 다른 나라를 신경 쓰지 않아 투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묵가학파는 유가가 공동체 형성의 초석이라고 여기는 강한 가족애를 부정합니다. 강한 가족애가 가족 이외의 사람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묵가학교는 '겸상애교상리'를 주장하며 가족을 넘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즉, 그는 나와 당신을 차별적인 사랑이 아닌 동등하게 사랑하여 서로에게 이익을 줄 것을 주장했습니다. 모자는 겸손, 즉 평등한 사랑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결국 어떤 의미에서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사랑은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때 극대화됩니다. 수공예의 집단이었던 이들은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이해하고 이윤과 노동을 따로 창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이들을 "머리가 닳고 발뒤꿈치가 떨어져도 세상을 이롭게 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26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여기는 그들의 눈에는 직접 제작에 참여하지 않고 음악과 장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왕자와 귀족들과 교제하는 유생들이 아무런 이익도 창출하지 못한 채 낭비를 조장하는 기생집단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들은 유가가 이상화하는 가부장제와 봉건주의를 부인했습니다. 즉, 가부장제의 권한과 그 권위의 근거가 되는 재산 소유권이 부정된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그는 유가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부모의 사랑을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그들이 "아버지를 부정한다"고 비판했고, 그들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유가 자체의 의미를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씨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세상을 정립하는 사랑의 핵심입니다. 사랑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 묵가 역시 인간의 감정이 인간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부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주장하는 겸손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정하고 결단을 통해서만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묵자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종교적 열정으로 유지된 것 같았지만, 학교로서는 곧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에 대한 도전
양주는 한 점의 작품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양주학파의 사상은 여시춘추와 열자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맹자나 한비자의 비판에서 그의 이론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유가가 적극적으로 저축 욕구를 표출한 반면, 양주는 소극적인 은둔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양주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상호 비간섭주의와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문화와 제도를 인위적인 가식으로 치부하고 개인의 현실만을 인정했습니다.
맹자는 "양주사상은 내게 원칙이고, 내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26). 이런 비판을 유도하는 양주의 입장은 '개방'과 '양주의 취지는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하게 하지 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 세상이 잘 다스려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리를 지키며 마음을 흔들거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외부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삶의 방식이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위로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하면 세상이겠지만 그마저도 나만큼 소중한 것은 아니다. 제 목숨과 세상을 바꿔 주시겠습니까? 그런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털 하나라도 훼손하지 않겠다"는 문장입니다. 내 몸에서 가장 작은 머리카락도 바깥 세상보다 소중합니다.
그들의 자존심에 대한 이기심은 사회적 참여를 인간의 본질로 설정한 맹자의 생각과 배치됩니다. 맹자가 주장하는 인간성, 의, 예의, 지식의 인간성은 인간이 서로 위계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양주의 개인주의는 인간의 본질조차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특히 사회와 사회의 이름으로 된 이데올로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양주는 맹자의 눈에는 '임금을 부정하는 자'(등문공하9)로 비쳐졌습니다. 그러므로 왕과 신하 사이의 덕이 '의'라는 것을 모르는 무리입니다. 양주의 자존심은 장자의 사상에 의해 계승되었고, 장자의 사상은 중국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양주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비판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맹자의 비판이 후세에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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